창의력에 관하여

2018. 5. 29. 14:00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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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창의력에 관한 어떤 동영상을 보았다. 이야기의 주제는 창의력은 어떤식으로 발현되는가 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확실성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확실하지 않은 상태로 있다면 불확실성을 느끼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오게된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줄이며 확실한 상태로 이전하도록 진화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현상들에 대한 패턴을 자연스럽게 찾는다.


우리의 이러한 현상은 생존에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새로운 사실에 접근하기 힘든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만들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며 갈수록 정보 생산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세상이다. 진화로 얻은 패턴찾기 능력은 현대의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도 작동한다. 문제는 우리가 감지한 패턴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소음과 신호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생긴다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 진실을 가장한 거짓 정보, 우리에게 내재된 편향 등 남이 우리를 속이며 심어지는 자신이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


불확실성이 주는 고통을 피해서 우리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을 재빨리 믿어버리지만 불확실성만큼 우리를 더 창의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는 없다. 


창의적인 발상이란 아주 먼 2가지 이상의 개념을 한데 묶는 것이다. 그런데 아주 멀다는 것은 상대적이고 오히려 창의적인 사람에게는 멀리 떨어져 있는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동떨어져 보이는 개념을 묶는 것은 논리적인 생각에 입각한 작은 도약인데 우리가 이것을 볼 때는 아주 큰 도약으로 보인다. 그들과 달리 멀어 보이는 이유는 그들 생각의 공간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즉 기존과 다른 편향과 기존의 보편적인 전제들을 달리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보다 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겐 논리적인 절차에 따른 작은 도약을 했지만 일반인들에겐 상상도 못할 큰 도약을 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확실성을 우리는 긍정적이며 생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모른다는 것은 앎으로 가는 첫 단계이다.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절대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을 빠르게 해소하려 피상적인 생각에서 사고를 그친다면, 혹은 완전히 외면한다면 깨달을 수 없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새로운 지식은 계속 생산되고 기존의 패러다임에 도전해 새롭게 안착할 것이다. 이전에는 새로운 정보의 생산과 전파가 지금처럼 빠르지 않았기에 우리의 유한한 삶 속에서 고정관념을 형성한 지식으로 살아도 문제되지 않았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융합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 나와 다른 문화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가 믿는 믿음조차 의심해 볼 수 있는 용기와 스스로의 믿음에 반하는 정보들도 살펴볼 수 있는 열린 마음도 필요하다. 


창의력을 위해서라면 결과에서 원인을 찾는 결정론적 사고가 아닌 다양한 의견에서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확률론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직관보다는 심사숙고하는 깊은 사고력이 더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물론 이것도 내 편향된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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