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과 운에 관하여

2019. 12. 29. 13:18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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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요소 개입이 적은 상황에서는 실력의 유무를 판가름하기 쉽다. 농구 같은 경기에서는 외부 요소 개입이 매우 적으며 안정적인 분포를 보인다. 확실히 실력에 따라서 경기 결과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주식이나 경제 전망은 외부 개입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리가 전망에 대한 예측이 실력인지 아닌지 판가름하기 어렵다. 모든 경제 전문가를 불러놓고 매월 말일 다음달 전망을 하게 한 후 전망과 현실이 동일한 전문가만 살아남게 한다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살아있는 전문가를 보기 힘들 것이다.

 

만약 주사위를 던지고 그 수에 해당하는 달러를 받게되는 게임이 있다고 해보자. 이 게임의 한판당 최대 획득 금액은 6달러이며 최소는 1달러이다. 기대값은 3.5달러이다. 이제 여기서 게임 참여비가 있다고 할 때 당신은 기대값보다 참여비가 낮을 때 참여해야 한다. 게임 참여비가 3달러인 경우 당신에게 유리하다. 기대값보다 작기 때문에 장기간동안의 게임 참여로 당신은 돈을 벌게 된다. 하지만 참여비가 4달러인 경우 당신에게 불리하다. 기대값 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 경우 당신이 운이 좋지 않은 이상 당신은 지속되는 게임에서 돈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단 한번의 결과는 순전히 운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게임 참여비가 3달러이든 4달러이든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수가 5 혹은 6이라면 게임 참여비가 3달러이든 4달러이든 돈을 벌게 된다. 단순히 결과만 봐서는 게임 참여자가 돈을 번게 실력인지 운인지 알 수 없다. 오로지 의사 결정 시스템을 분석해야만 알 수 있다. 어떤 생각과 과정을 통해서 게임에 참여 했는지 말이다. 만약 게임 참여자와 대화할 수 없어 의사 결정 과정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게임 참여자에게 더 많은 게임을 하게 만들고 그 결과를 보면 된다.

 

여기서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3.5달러라는 기대값은 무수히 많은 참여를 통해서 기대할 수 있는 값이다. 참여 횟수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참여를 할수록 기대할 수 있다. 만약 많은 참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충분한 돈이 없다면 단기간내에 돈을 소지하게되어 많은 참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10달러의 예산으로 3 달러의 게임 참가비를 내야하는 게임에 참여한다고 가정했을 때 운 나쁘게도 처음부터 열번의 게임 중 모든 게임에서 2 이하의 숫자만 나왔다면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을 잃었을 것이다(최악의 상황은 매번 주사위 숫자 1만 나오게되어 8번만에 게임이 끝나는 상황). 기대값보다 낮은 참가비로 진행했기에 좋은 판단이라 할 수 있어 보이지만 이렇듯 운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좋은 전략이라도 운이 나쁘다면 좋은 결과를 얻긴 힘들다(물론 전체 자산이 너무 적은 상태로 게임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전략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보다 더 무수히 많은 요소를 알아야하고 알 수 없는 요소가 더 많다는 사실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이런 주장으로는 우리는 어떤 의사결정도 하지 못할 것이다)

 

주사위 게임을 통해서 대략적인 운과 실력의 차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주사위 게임보다 복잡하고 난해하다. 현실에서는 대부분 기대값조차 제대로 알 수 없으면 기대값을 산출했다 하더라도 기대값의 정확도 역시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증거의 부재를 부재의 증거와 혼돈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경우 상황은 더 운에 기댈수 밖에 없다. 그리고 게임 참여자들의 과거 결과 내역을 제대로 알기 힘들다. 좋은 결과만 보여주고 나쁜 결과는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비대칭과 인식의 한계 등 여러 불완전한 정보 때문에 현실은 주사위 게임보다 훨씬 더 복잡해진다.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는 무언가 결정해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최소한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을 다시 한번 집고 넘어가자.

 

사람들은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과정은 그 자체로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과 실력이 혼합되어 있는 영역에서는 결과만을 가지고 실력의 유무를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외부 요소 개입이 많은 영역에서는 의사결정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훌륭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긴 시간을 통해서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단 한번 혹은 몇번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긴 시간안에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긴 시간동안 많은 횟수에 따라서 실행된 결과가 대부분 옳다면 그 사람은 해당 분야에 실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 혹은 적은 횟수에 따라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 그 사람은 실력인지 운인지 판가름하기 어렵다.

 

외부요소개입이 얼마나 많은지. 시간과 횟수. 이것들이 실력과 운을 판가름하는 좋은 척도가 된다.

 

외부 요소 개입이 많은 영역인가?

그렇지 않다면 단순히 결과만으로 실력의 유무를 판단하면 된다.

반대로 그렇다면 결과보다는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과정을 살펴보기 힘들다면 오랜 시간동안 그 사람이 내린 의사결정에 대한 결과를 살펴보라. 만약 오랜 시간동안 내린 결과를 살펴볼 데이터가 없다면 판단을 유보하라.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공허한 말들을 멀리하라.

내가 옳았는지는 긴 시간만이 답해 줄 것이다.

기나긴 생존 그 자체가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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