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마음

2017. 5. 2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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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마음 - 조서넌 하이트


1년에 한권 읽을까 말까했던 내가 작년 말 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방의 누명이라는 타이틀의 방송을 보고서다. 우리가 믿었던 상식과 같은 지식에 반하는 내용을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주장했다. 정말인지 궁금했고 진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인터넷과 책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인터넷은 많은 정보가 있지만 사실과 거짓이 다양하게 공존 했고 책에서 오는 신뢰성이 더 컸기 때문에 책을 통해서 확인하고자 했다. 이런 계기를 통해서 이런 저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러한 탐구 속에서 진실과 함께 사회의 다양한 갈등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내용을 믿는 믿음을 향한 서로의 대립은 정치와 일반인뿐 아니라 과학과 같은 진보적이라 생각했던 분야에도 있었다. 이런 갈등을 알게된 시기가 탄핵을 위한 시민들의 촛불시위와 맞물려 나는 더욱 궁금했다. 많은 사회적 갈등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연히 서평을 잘하시는 분의 블로그를 통해서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 친절하게도 저자는 책의 장 끝마다 요약설명을 담아서 내용을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그 요약 내용들만 봐도 저자가 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그 시각을 다음과 같이 공유하고자 한다.


1장 - 도덕성은 어디서 생겨나는가?


합리주의자의 기존 학계의 주장을 말하며 이에 대한 반론으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도덕성의 범위는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서양적이고, 교육 수준이 높고, 개인주의적인 문화에서는 도덕성의 범위가 몹시 좁다. 반면 사회중심적 문화에서는 도덕성의 범위를 넓히는 경향이 있는데, 이로써 삶의 더 다양한 측면을 아우르고 통제한다.

  • 사람들이 갖는 직감(특히 역겨움 및 경멸감과 관련된 것)은 때로 도덕적 추론을 진행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도덕적 추론은 때로 사후 조작과 다름없는 양상을 보인다.

  • 도덕성은 아이들이 피해의 개념을 잘 이해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세워나가는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틀림없이 문화를 통한 학습이나 문화적인 유도가 합리주의 이론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합리주의자의 선천론적, 후천론적과 같은 이분법적 주장이 아닌 선천적인 동시에 후천적인 도덕성을 발달시켜 나간다는 것이라 말한다. 다시 말해 도덕성이 도덕적 추론을 통해 형성하는 것이 아닌 직관(선천론적)과 문화적 적응과 배움(후천론적)이 혼합되어 한 사람의 도덕성을 만든다고 말한다.


2장 - 도덕은 너무나도 감성적이다.


이성적 추론과 직관을 통해서 도덕적 판단을 하게된다. 2장에서는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봐왔는지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제시하며 저자는 직관이 먼저고 추론은 그 다음이라 말한다. 이 모습을 저자는 기수가 코끼리에 올라탄 모습으로 비유한다. 기수는 추론을, 코끼리는 직관을 나타낸다. 기수는 코끼리의 시중을 들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직관(코끼리)이 반응하면 그에 따르는 추론(기수)이 따라간다. 따라서 남을 설득하고 논쟁에서 이기려면 상대방의 직관을 먼저 건드려야 한다.

여담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코끼리-기수 비유에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의 비유가 맞지 않나 한참을 생각했다. 기수가 코끼리를 조종한다는 관념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흄이 말한 이성이 열정의 하인이라는 말에서 추론한게 맞다면 기수(직관)가 주인이고 코끼리(추론)는 하인이라는 생각이 맞지 않나 싶다. 아마도 저자는 둘의 관계보다 개체에 더 집중해서 생각한듯 싶다. 코끼리는 더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는 느낌과 사람은 추론을 잘한다는 각 개체들의 특성을 생각하며 말이다. 관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동양적 사고와 각 개체로 세상을 바라보는 서양적 사고의 차이가 느껴진다.


3장 - 나는 바르다, 남이 잘못이다.


2장에서 제시한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라는 원칙 뒷받침하기 위해 여섯 개 분야의 실험 연구를 개괄한다. 이 실험은 직관에 해당한다.

  • (분트와 자이언스가 말한 것처럼)뇌는 무엇에 대해 항상, 그리고 즉시 평가를 내린다.

  • (토도로프의 연구와 내재적 연관 검사에서 드러나는 것처럼)사회적, 정치적 판단은 순식간의 직관적 인상에 심하게 좌우된다.

  • 우리의 신체 상태가 때로는 우리의 도덕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 사이코패스는 추론 능력은 있으나 느끼지 못한다.(더불어 도덕적 능력도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다) - 도덕적 직관 결핍

  • 아기는 느낄 수 있으나 추론 능력이 없다(그러나 도덕성 발달의 시초는 지니고 있다.) - 초기 도덕적 직관 존재

  • (다마지오와 그린의 연구, 그리고 최근 급증한 연구에서 나타나듯이)정서반응은 뇌에서 정해진 장소와 때에 맞추어 일어난다.

장 막지막에 저자는 저자가 주장하는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라는 원칙에서 재미있는 의문을 던진다.

진화를 통해서 우리는 왜 우리 안에 판사나 과학자가 아닌 변호사를 발달시킨 것일까?

우리 조상들의 생존에 더 중요해썬 것은 '진실'과 '평판' 중 과연 어느 쪽이었을까?


4장 - 도덕은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과 같다


3장에서 직관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면 4장에서는 도덕적 추론에 대해 살펴본다.

  • 내가 세상에 어떤 모습을 보일지 강박적일 정도로 염려한다. 물론 이 부분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기에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다.

  • 의식적 추론은 마치 대통령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공보관 처럼 우리의 모든 입장을 자동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 우리 안에 있는 공보관을 통해서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기도 한다. 심지어 나 자신을 속여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믿게 만든다.

  • 이성적 추론은 우리가 원하는 결론이 있으면 갖은 수를 써서 그것에 도달하게 해준다. 믿고 싶을 때는 "내가 이것을 믿어도 될까?", 믿고 싶지 않을 때는 "내가 이것을 믿어야만 하나?" 라고 서로 다르게 생각한다. - 이미 직관이 방향을 설정했다.

  • 도덕이나 정치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개인보다 집단을 염두에 두고 판단을 내릴 때가 많다. 우리가 팀을 지지하고 팀에 헌신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는 이성적 추론 능력을 활용한다.

저자는 마지막에 이성에 대한 신봉을 경고한다. 직관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채로 인간을 바라본다면 어떤 분야든지 그 한계가 명확할 것이다. 저자 역시 확증 편향과 같은 부분을 통해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증거가 모든 반론에 절대적이지 않다며 조금은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야 말로 다양한 의견에 귀기울일 수 있고 그래야만 비판적인 의견도 받아 들일 수 있는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 자세가 될 것이라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모두가 이러한 자세로 상호협력한다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소모적 논쟁에서 생산적 논쟁으로 바뀌는 것이다.


5장 - 편협한 도덕성을 넘어


두 번째 원칙인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를 제시한다.

  • WEIRED(서양적, 고학력, 산업화, 부유함, 민주적)의 특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 세상이 관계보다는 별개의 사물로 가득 차 있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 도덕적 다원주의가 이 세상의 실상에는 더 잘 맞는다. 도덕의 범위가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인류학에서는 기정 사실이다.

  • 보통 도덕의 범위는 WEIRD권 문화에서는 좁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곳에서는 도덕의 범위가 대체로 자율성의 윤리(개인에 대한 피해, 압제, 사기 등과 관련한 도적적 관심사)에 국한된다. 그러나 그 밖의 대부분의 사회를 비롯하여 WEIRD권 사회 내에서도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도덕 매트릭스 안에서는, 도덕의 범위가 (공동체의 윤리와 신성함의 윤리를 포함하면서) 더 넓어지는 경향이 있다.

  • 도덕 매트릭스는 사람들을 하나롤 묶어주지만, 그것은 다른 매트릭스가 가진 논리(심지어 다른 매트릭스의 존재까지도)를 못보게 하는 면이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에 하나 이상의 도덕적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헤아리는 데 무척이나 어려움을 느낀다. 사람을 판단하거나 사회를 운영하는 정당한 틀도 하나 이상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도덕성 안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다양함이 존재함을 말해준다.


6장 - 바른 마음이 지닌 여섯 가지 미각


도덕성에 다양성이 있다면 정확히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 장에서 설명한다. 도덕성을 미각에 비유하며 여섯 가지 도덕성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장에서는 다양성성 연구 초기에 나왔던 초안에 해당하는 5가지 도덕성을 설명한다. 다양성을 말하기에 앞서 도덕성에 대한 두 가지 견해를 제시한다. 의무론-공리주의와 다원주의적-감성주의적-자연주의적이다. 현대에는 의무론과 공리주의 보다 흄이 제시했던 다원주의적 접근이 훌륭한 지침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다원주의적 발상을 바탕으로 모듈성 개념을 덧 붙여 세상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 인식을 선천적 인식(본래적 동인)과 문화 속에서 발전한 후천적 인식(통용적 동인)으로 구분한다.


7장 - 정치는 도덕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저자는 도덕성이 선천적 개념을 제시 하였는데 이 장에서 선천적 개념의 다섯 가지인 배려/피해, 공평성/부정,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에 대해서 말한다.

  • 배려/피해 : 무력한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적응 도전 과제에 임하면서였다. 이 기반 때문에 우리는 고통과 필요의 신호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또 이 기반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잔혹함을 경멸하는 경향을 보이고, 나아가 고통받는 이들을 돌봐주려는 마음을 갖는다.

  • 공평성/부정 : 협동으로 보상을 얻되 착취는 당하지 말아야 하는 적응 도전과제에 임하면서 발달하게 되었다. 우리는 누가 협동과 호혜적 이타주의에 훌륭한(혹은 나쁜) 파트너다 싶으면 그 신호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우리가 사기꾼이나 부정행위자와 관계를 끊거나 그에게 벌을 주고 싶어 하는 것도 이 기반 때문이다.

  • 충섬심/배신 : 연합을 구성하고 유지해야 하는 적응 도전 과제에 임하면서였다. 이 기반 때문에 우리는 누가 훌륭한 팀플레이어인지에(혹은 그렇지 않은지에) 촉각을 곤두 세우게 된다. 이 기반 때문에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는 신뢰와 보상을 주고 싶어 하고, 반대로 나 혹은 우리 집단을 배반하는 사람에게는 위해, 추방, 심지어 살인으로 응징하고 싶어 한다.

  • 권위/전복 : 사회적 위계 서열 내에서 인간관계를 잘 구축하여 모종의 이득을 거두어야 하는 적응 도전과제에 임하면서였다. 이 기반 때문에 우리는 서열이나 지위의 표시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며, 타인이 자신의 주어진 지위에 맞게 잘 행동하고 있는지도(혹은 그렇지 않은지도) 민감하게 살핀다.

  • 고귀감/추함 : 애초에는 잡식동물의 딜레마라는 적응 도전과에 임하면서였으나, 병원체와 기생충이 득실대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더 광범위한 도전 과제 역시 후일 이 기반을 발달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기반에는 행동 면역 체계도 포함되는바, 우리는 이를 통해 다양한 상징적 사물과 위협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사람들은 집단을 하나로 뭉쳐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거기에 비합리적일 정도로 엄청난 가치(긍정적인 가치는 물론 부정적인 가치도)를 쏟아붓는데, 그런 경향이 나타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기반 때문이다.

이 장에서 다양한 도덕성을 살펴보며 좌파와 우파가 서로다른 도덕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좌파는 배려와 공평성 기반에 주로 기대는 반면, 우파는 다섯 가지 기반 모두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측을 바탕으로 저자는 유권자들과 연결될 더 폭넓고 다양한 방법도 결국 보수적 정치인들이 손에 쥐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라는 확장된 추측을 내보인다.


8장 - 도덕적인 인간이 승리한다


저자는 도덕심리학을 이용해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민주당이 유권자 표심을 잡지 못했는지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사회적 직관주의자 모델을 더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저자가 주장하는 여섯 가지 도덕성을 더 잘 골고루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와 공평성 관련 직관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도록 도덕성 기반 이론을 일부 수정하였다.

자유/압제 : 지배의 표시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의분을 느낀다. 불한당과 독재자에게 저항하거나 그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 같이 뭉쳐야 한다는 욕구도 여기에서부터 생겨난다. 이 기반을 잘 알면 자유주의자와 일부 보수주의자가 왜 "나를 짓밟지 마라" 식의 반정부 감정을 가지는지는 물론, 좌퐈의 평등주의와 반권위주의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공평성 기반에 수정을 가해 그것이 비례의 원칙에 초첨을 맞출 수 있도록 했다. 공평성 기반이 호혜적 이타주의 심리에서 출발하는 것은 맞지만, 인간이 험담과 징계가 가능한 도덕 공동체를 만들어내고부터는 공평성 기반이 짊어진 의무가 훨씬 많아졌다. 사람들 대부분은 심층적인 직관 차원에서 인과법칙을 중시한다. 사기꾼은 벌을 받고 착하게 살아가는 시민은 응분의 보상을 받기를 사람들은 대체로 기대한다.

공평성 기반을 수정하고나니 왜 미국의 시골 주민과 노동 계층은 일반적으로 공화당에 표를 던지는 경향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해명할 수 있게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들의 도덕적 이해에 따라서 투표하고 있는 것이다.


9장 - 우리는 왜 그토록 이집단성이 되는가?


기존 학계는 집단 선택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저자는 집단 선택에 초점을 맞춘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다차원 선택을 저자가 지지하는 이유는 인간이 이기적이면서 이집단적인 행동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장에서 집단 선택에 대한 증거 네 가지를 개괄한다.

  • 중대 과도기를 통해 초개체가 만들어진다. 이제까지 지구에서 살아온 생명체의 역사는 중대 과도기의 본보기가 몇 번이고 되풀이된 과정이었다. 생물학적 위계질서의 한 차원에서 무임승차자 문제가 무난히 해결되고 나면, 그 다음 단계의 위계 설에여 들어서는 이전보다 더 거대하고 강력한 탈것(초개체)이 등장한다. 이러한 초개체는 집단 내 노동 분업, 협동, 이타주의 등의 새로운 특성들을 지닌다.

  • 공통된 의도를 통해 도덕 매트릭스가 생겨난다. 우리 인간은 공통된 의도를 가지고 다른 이의 머릿속 생각을 읽는 고유한 능력을 가지는데, 인간은 이 능력을 가지면서 마치 루비콘 강을 건너듯 집단 내에서 아주 원활히 기능할 수 있게 되었다. 초창기 인간들은 이 능력을 바탕으로 서로 협동하고 분업을 이룬 것은 물론, 공통의 규범을 만들어 서로의 행동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적 삶을 지배하는 도덕 매트릭스도 이 공통의 규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유전자와 문화는 공진화한다. 우리 조상들이 서로의 의도를 공유하기 시작한 순간, 우리 인간의 진화는 양갈래 실이 엉키듯 이루어졌다. 사람들이 새로운 관습,규범,제도를 만들어내면, 이집단적인 특성이 가지는 적응의 정도도 변화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유전자와 문화 공진화로 인해 우리가 일련의 부족 본능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어떤 집단에 속했는지 표시하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며, 그런 표시를 한 뒤에는 자기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과 우선적으로 협동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 진화는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이중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기적인 영장류이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보다 크고 고결한 무엇의 일부가 되려는 열망도 갖고 있다. 우리의 본성은 90퍼센트가 침팬지와 같고, 나머지 10퍼센트는 벌과 같다고 한다.


10장 - 군집 스위치: 나를잊고 거대한 무엇에 빠져들게 만드는 능력


9장에서 우리의 본성 중 10퍼센트는 벌과 같이 이집단성을 나타낸다고 했다. 이번 장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이집단적으로 변하게 되는지에 대해 살펴보며 군집가설을 제시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군집 생물이다. 우리는 (특정 상황에 처하면) 개인의 이익을 초월하여, (잠시, 그리고 열광적으로) 자아를 잊고 자신보다 커다란 무엇에 빠져드는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을 나는 군집 스위치라 했다. 군집 스위치를 켜는 방법으로는 흔히 세 가지, 즉 자연에 대한 경외심, 뒤르켐주의적 약물, 레이브 파티가 있다고 설명했다. 진화론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편향적 사랑, 즉 서로에 대한 동질감,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 무임승차자에 대한 억제, 이 세가지를 통해 강화되는 그 편향적 사랑이, 인간이 이룩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이 아닐까 추측한다.


11장 - 종교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 관심받고 있는 신무신론파는 세상에 존재하는 악 대부분은 종교에 그 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종교를 믿는 이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문제가 무신론자들에게 있다. 그들은 비도덕적인데다가 신뢰하기 힘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종교적인 사람이 자선단체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하고, 이타주의적 가치관도 더 많이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낯선 사람들에게 이타적인 정도를 측정해보면 종교가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저자는 종교역시 집단 차원의 선택인바 편향적 이타주의가 나타나는게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 자기가 속한 도덕 공동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인정과 도움을 베풀고 그것으로 자기 평판이 올라갈 수 있을 때에는 특히 더 그럴 것이다.

종교를 초자연적 동인으로 보면 우리는 종교를 오해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다윈주의를 통해(다차원 선택에 뒤따르는 것으로) 도덕성을 바라보게 되면 , 이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 얻어진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우리가 이끌어 낼 수 있는 확장된 주장은 다음과 같다. 언제나 극단으로 치닫는 믿음은 위험하다(신은 우리가 믿는 신이 유일하다와 같은 믿음). 하지만 이것이 적절히 통제만 된다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은 최대가 될 것이며 사회적으로 아주 이상적인 모습을 가질 수 있다. 

신을 믿으며 종교가 생겼고 이를 통해서 우리가 얻었던 이득이 상당하다. 지금의 우리를 이끌어준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절제와 배려를 통해서 한정된 자원에서도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준것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오늘 날에는 한정된 자원을 나누는 것이 아닌 모두가 가지려고만 한다. 이기심이 먼저인지 자원의 풍족함이 먼저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전과는 다른 사회분위기라는 것은 분명하다. 종교가 있어서 누리는 이점이 아닌 단점들이 부각되고 있다. 아마 종교인들의 잘못과 종교에 대한 오해가 커지면서 증폭된 것 같다. 종교가 정말 필요없을까 라는 의문에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장이다.


12장 - 좀 더 건설적으로 싸울 수는 없을까


보수와 진보의 시작은 유전적으로 내재된 현상과 살아가면서 겪는 문화와 경험으로 인해서 구축된다고 말한다. 정치는 어느 한쪽에 일단 발을 들이고 나면, 그 안의 도덕 매트릭스에 갇혀 거기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저자는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를 이해하는 일이 더 어려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진보주의자의 경우 충성심,권위,고귀함 기반을 도덕성과 관련시켜 이해하는 것을 더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장에서 나는 도덕적 자본이라는 것을 도덕 공동체를 지탱시키는 자원이라고 정의했는데 특히 진보주의자들은 이 도덕적 자본의 존재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저자는 진보와 보수가 음과 양의 관계처럼 상호보완적이라 말한다. 진보, 보수, 자유주의자들에게 모두 사회에 순기능을 하는 역할들이 있다. 서로가 적절히 균형을 맞춘다면 좀 더 생산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한다. 도덕이 우리를 뭉치게 한다는 것은 결국 각자의 이데올로기를 내걸고 편을 갈라 싸우게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편이 나뉘면 우리는 매 싸움에 이 세상의 운명이라도 걸린 듯이 서로 이를 악물고 싸운다. 도덕이 우리를 눈멀게 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각편에는 저마다 좋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 이야기 중에는 뭔가 귀담아들을 것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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